○ 이삭 알베니스(1860~1909)는 스페인 음악의 독특한 매력, 특히 안달루시아 지방의 음악을 세계에 알린 일등공신이다. 방랑자 기질이 있어 어려서부터 유럽 각국을 돌아다녔기에 모국의 풍부한 음악적 원천에 서구적 기법을 흡수하는 것을 평생 과업으로 추구했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다른 스페인의 위대한 음악가에 비해서 국제성을 지니고 있다. 

○ 알베니스의 작품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피아노 곡이다. 그러나 1892년 영국의 은행가 프란시스 버딧 머니-카우트의 후원에 힘입어 오페라에도 관심을 갖게된다. <아서 왕 3부작> 역시 머니-카우트가 대본을 쓰는 조건으로 시작한 엄청난 프로젝트였으며 <멀린>, <란슬롯>, <귀네비어>로 이어질 예정이었으나 완성을 보지 못했다. <멀린>은 1905년 작곡자의 피아노 반주로 브뤼셀에서 연주되었지만 공식 초연되지 못했고 1950년 아마추어 클럽에 의해 스페인어로 공연되었다는 기록이 있을 뿐이다. 지휘자 호세 데 에우제비오는 다양한 소스를 통한 악보 수집으로 이 작품의 완전한 복원에 성공했고 2003년 6월, 테아트로 레알 드 마드리드에서 진정한 초연을 갖기에 이른다. 그는 미완성으로 남아있는 <란슬롯>도 복원하겠다는 원대한 꿈을 갖고 있다. 

○ <멀린>에서 금방 느낄 수 있는 것은 바그너의 강력한 영향이다. 알베니스는 전설상의 영국 역사를 다룬 이 오페라에서 스페인 색채는 배제하고 무한선율을 사용한 웅혼한 극적 흐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연출자 존 듀는 의도적인 바그너 흉내내기 대신 이 오페라만의 독특성을 살리는데 주력했다. 노래가 없는 왕비 귀네비어의 역할을 무용수에게 맡기면서 충분한 비중을 부여했고 여러 차례 등장하는 간주곡 장면에는 중국 출신의 메이 홍 린이 안무한 풍부한 춤을 삽입하여 개성적인 무대를 만들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