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차르트의 오페라는 크게 이탈리아 양식의 오페라 세리아와 오페라 부파, 독일 양식의 징슈필로 구별할 수 있다. <후궁 탈출>은 <마술 피리>와 더불어 징슈필의 대표작이다. 1782년 빈에서 초연된 이 작품은 이른바 ‘탈출 오페라’의 전형인데, 그 패턴은 대체로 기독교 사회의 여인이 배가 좌초되거나 납치 당하여 회교 영주의 후궁에 감금되면서 온갖 유혹을 받지만 이를 이겨내고 기독교 남자에게 구출된다는 내용이다. 오페라 원제목 은 우리말로 친절하게 번역하자면 ‘후궁으로부터 애인과 도망치기’ 정도가 될 것이지만 <후궁 탈출>이라는 압축적 표현도 유효하다. 

○ 이스탄불의 톱카피(Topkapi) 궁전은 무라트 3세가 궁전 맨 안쪽에 침실을 조영한 1578년 하렘으로 조성되었다. 새 궁전으로 이전하기까지 400년간 역대 술탄이 계속 증축하여 좁은 통로와 수백 개의 방이 들어선 미궁이자 하렘의 상징처럼 알려져 왔다. 

○ 1946년 호주 멜버른 태생의 연출가 엘리야 모진스키는 1975년 로열 오페라 하우스에서 브리튼의 <피터 그라임즈>로 데뷔한 이래 명징한 시각적 상징주의, 간결하고 세련된 무대장치, 현대적 감각과 휴머니즘으로 코벤트 가든의 대표 연출가로 성장해왔다. 톱카피 궁전은 무대가 아닌 개방된 공간이지만 모진스키의 연출 철학을 구현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 모진스키와 마찬가지로 호주 출신인 지휘자 찰스 매케라스는 야나체크를 비롯한 동유럽 음악에서 명성을 얻기 시작하였지만 나이가 들면서 모차르트의 최고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다. 올해 79세의 현역으로 그 나이와 위상 면에서 세계 지휘계의 수장 격이다. 이 오페라 영화에서는 터키 출신의 옐다 코달리(콘스탄체)를 깜짝 캐스팅하고 힘좋은 미국 테너 폴 그로브즈(벨몬테)를 기용한 가운데 유려하고 참신한 연주를 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