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낭송 음반 낸 ‘지리산 시인’ 박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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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시 듣고 인생 고비 넘긴 독자 덕분에 용기냈지요”

시 낭송 음반 낸 ‘지리산 시인’ 박남준

17편씩 골라 직접 시낭송집 2개 공식적으론 15년 만에 처음 발매
‘저녁무렵에 오는 첼로’ 등 애송시 문단 술자리에서 소문난 낭송가 “코로나로 힘든 시기 잠시 위로를”
‘지리산 산악 열차 반대’ 상임대표도

“시 낭송 음반을 공식적으로 낸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비공식적으로는 벌써 십오 년쯤 전에 한번 낸 적이 있지요. 그 음반을 들은 독자분을 우연히 마주쳤는데, 남편과 관계가 나빠져서 이혼까지 생각할 정도로 힘들었을 때 차 안에서 제 시 낭송을 들었던 게 큰 위로가 되어서 위기를 잘 넘겼다고 하시더군요. 그때 생각이 나서, 음반사의 제안에 응하게 되었어요.” - 문화책&생각

“제 시 듣고 인생 고비 넘긴 독자 덕분에 용기냈지요”
지리산 자락 경남 하동 악양에 사는 박남준 시인이 시 낭송 음반 두 장을 한꺼번에 냈다. 자신의 시들을 직접 낭송한 것인데, ‘저녁 무렵에 오는 첼로’와 ‘내 안의 당신께’를 표제로 삼은 두 음반에 각각 시 열일곱 편씩을 담았다. 박남준 시인은 평소에도 행사 자리나 술자리 등에서 시를 즐겨 낭송하기로 유명한데, 가까운 친구인 임의진 작가가 2006년에 발매한 월드뮤직 컴필레이션 음반 <기차여행>에 그가 낭송한 ‘명사산을 오르다’가 수록되기도 했다. 19일 전화로 만난 그는 시를 눈으로만 익는 묵독과 달리 소리 내어 읽는 낭독에는 또 다른 의미와 가치가 있다고 강조했다.
 
“시를 그냥 눈으로 읽는 것과 소리 내서 낭송하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눈으로 읽는 건 어디까지나 혼자서 하는 행위이지만, 소리 내서 읽는 건 그 소리를 듣는 누군가를 상정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누군가와 함께하는 행위인 거죠. 시인이 시를 써 놓고 나 몰라라 하는 것보다는 제 목소리로 들려주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싶습니다.”
등단 무렵 전북 전주에 살던 그가 서울에서 이런저런 문단 술자리에 가면 선배 문인들은 그가 전주 출신이라는 이유로 소리를 청하고는 했다. 처음에는 임방울의 ‘쑥대머리’ 같은 노래를 익혀서 부르기도 했지만, 언젠가부터 노래를 시 낭송으로 바꾸게 되었다. 휴대전화로 배경음악을 틀어 놓고 자신의 시를 외워서 낭송하면 노래 못지 않게 뜨거운 박수와 호응이 쏟아졌다. 그는 분량이 제법 긴 시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외워서 낭송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기억력을 자랑하려는 것은 아니고, 여기에도 내력이 있다.
 
“벌써 이십년쯤 전인가요, 시인들과 가수들이 모여서 만든 시 노래 모임 ‘나팔꽃’ 동인 공연에 초대받아 무대에 선 적이 있어요. 제 시를 낭송하는 건데, 시가 인쇄된 종이를 들고 무대에 올랐죠. 그런데 종이를 든 손이 어찌다 떨리던지 종이가 마이크를 다닥다닥 때리는 소리가 너무 크게 들리는 거예요. 보기에도 안쓰러울 정도였죠. 다음부터는 종이를 들고 무대에 오르지 않으리라 결심하고, 낭송 행사가 있으면 며칠 전부터 시를 외우게 됐어요. 두 손은 다리를 꽉 잡거나 몸을 껴안아서 떨리지 않게 하고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시를 외워서 낭송하는 버릇이 들더군요.”
이번 음반에는 ‘흰 부추꽃으로’ ‘저녁 무렵에 오는 첼로’ ‘아름다운 관계’처럼 평소 그가 즐겨 낭송하던 작품들이 담겼다. 녹음실에서 시 낭송을 먼저 하고 기타와 피아노 연주를 위주로 한 음악을 나중에 깔았다. 두 음반에 실린 서른네 편 중 ‘저녁 무렵에 오는 첼로’만은 배경음악 없이 시인의 목소리만을 담았다.

“녹음 과정은 어렵지 않았어요. 엔지 한 번 안 내고 단숨에 끝냈죠. 그런데 예상치 못한 복병이 있더군요. 제가 전라도 사람이라서 ‘의’ 발음을 줄기차게 ‘으’로 하는 거예요. 고쳐서 다시 해 보려 해도 도저히 안 되더군요. 그냥 ‘으’로 갔어요. 어색하지만 오히려 자연스럽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코로나19 때문에 모두가 힘든 시기인데, 시 낭송을 들으며 위로를 받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좋겠다”고 말한 박 시인은 “지리산 아래로 이사 온 지 17년, 산자락에 낮게 엎드려 시나 쓰며 살 줄 알았는데 지리산 산악 열차 반대대책위원회 상임대표를 떠맡게 되어 고통받고 있다는 소식도 같이 전해 달라”고 주문했다.

▶ 시 낭송을 들으시려면 아래의 시 제목을 클릭하세요 
이름 부르는 일 https://youtu.be/VJtwC33v-Eo
내 안의 당신께 https://youtu.be/lNztnr3I8C0
상처받은 자에게 쑥부쟁이 꽃잎을 https://youtu.be/9ZUPSOkn1d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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