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쾌하고도 담백한 색채, 연주자의 각별한 애정과 열정 그리고 끊임없는 탐구의 결실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었던 2020년은 많은 연주자들이 관객과의 소통보다도 연주자 자신의 내면 또는 음악이 갖는 의미들에 천착했던 시간이었다. 보리스 길트버그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플라이 온 더 월(Fly On the Wall)’의 스튜어트 프렌치와 손을 잡고 2020년 1월부터 2021년 9월까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영상에 담았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2편은 각 작품마다 원 컷으로 녹화되었는데, 이를 통해 실제 공연과 스튜디오 녹음의 장점을 취함으로써 ‘거리두기’의 한계를 최대한 극복함과 동시에 작품 속에 담긴 베토벤의 위대한 정신을 온전히 전달하고자 했다. 내지 해설이 보여주듯 길트버그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프로젝트는 연주자의 베토벤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끊임없는 탐구가 바탕이 되었다. 길트버그는 초기의 생동감 넘치는 활기, 중기의 그늘 드리운 열정과 매혹적인 서정, 후기의 경외심 마저 느껴지는  - ‘초월’에 이르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의 장대한 세계를 명쾌하고도 담박한 색채로 조탁하고 있다. 이는 오롯이 작품에만 몰두한 끝에야 비로소 자태를 드러내는 베토벤 피아노 음악의 정수이자 이 같은 과정을 반복하며 마침내 자신의 색채를 입히는데 이르는 지난한 궁구의 과정을 거쳐 얻은 결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연주자가 인생의 원숙기에 이르렀을 때 또 한 번 전집 녹음이 이루어지길 기대하는 음반이다. 연주 영상과 관련된 이야기들은 Beethoven 32(https://beethoven32.com/)를 통해서도 열람할 수 있다.